인도 민속풍이 현대패션에 미치는 영향
과목명 : 의류학연구방법론
교수명 : 이욱자 교수님
제출일 : 2000년12월5일
제출자 : 계명대학교 의류학과
박사과정 4학기
1001133 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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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 론
Ⅱ. 인도의 문화적 배경
1. 역사적 배경
2. 사회적 배경
3. 종교적 배경
Ⅲ. 인도 민속의상의 특징
1. 형태와 특징
2. 인도 복식의 문화적 배경
3. 인도 복식의 종류
Ⅳ. 현대패션에 나타난 인도 민속풍
1. 20세기 패션에서의 오리엔탈리즘
2. 현대패션에 나타난 인도 민속풍 분석
1) 색상
2) 염색과 직물
3) 자수
4) 장신구
3. 인도 민속풍에 나타난 현대패션의 경향 분석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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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화는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대 지방에서 대나무 집에서 사는 경우는 없고, 열대 지방에서는 기름으로 튀긴 음식이 많으며 비가 많은 곳에서는 우의가 발달한 반면 건조 지대에서는 터번이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의복형태와 양식은 그 나라의 자연적인 환경인 외적 조건과 문화적인 환경과 민족성을 내포하는 내적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자연적인 조건에서는 기후와 그 나라의 지리적 위치가 어떠냐에 따라 의복양식이 달라진다. 북쪽 추운 지방에서는 몸에 꼭 맞게 봉제된 테일러드형 의복을 입고, 지중해, 아열대 지방 같은 더운 나라에서는 헐렁하고 느슨한 드레퍼리형 의복을 입는다. 또한 내적조건에 속하는 문화적인 환경은 자연환경보다 더 크게 복식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복식에 영향을 미치는 이념, 관습, 민속, 종교와 도덕 등의 다양성은 국가에 따라 독특한 의복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은 나라마다 서로 다른 문화형태를 가지므로 일률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없으나 의복의 형태와 양식은 자연적인 환경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변천되어 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나라의 민속복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그 나라의 외적, 내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민속복은 시대와 문화를 표현하는 직접적인 대상으로서 한 시대의 문화 전반의 흐름을 복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패션에 급속히 나타나고 있는 민속복은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의 홍수 속에서 자연과 격리되어 인위적인 상황 속에 갇히게 된 현대인들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음의 반영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까지 고유민속의상이 유지되고 있으면서 동서양의 교착지에 위치하여 여러 민족의 영향을 받은 인도의 민속복이 현대 패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특히 인도는 다양성의 나라로서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융합되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동양의 사상과 철학의 원류로서 일찍이 서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분규가 심하며 종교적으로 미신이 심하고 경제적으로 발전이 가장 늦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도는 우리에게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거대 시장’ ‘떠오르는 대륙’등으로 다가서고 있다. 1999년 5월, 인도 남부의 우주로켓 발사장에서는 미국 프랑스 중국에 이어 인도가 세계 4번째로 상업용 로켓 발사 기술을 보유하는 순간, 세계의 언론은 ‘후진국 인도는 20세기와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보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도는 세계 소프트시장 점유율의 20%로 미국 다음가는 소프트웨어 강국이다. 세계 500대 기업 중 200여 기업이 인도인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인이 없으면 미국 실리콘 벨리는 문을 닫아야할 정도로 실리콘 벨리 전체인구 기술의 40%에 달하는 40만 명이 인도인이다. 1999년도 인도의 소프트웨어 수출은 40억 달러로 2020년엔 인도의 경제규모가 세계 1, 2위를 다툴 것이란 전망도 대두 대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인도는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 강국, 달나라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려는 야심을 키울 만큼 과학이 발전한 나라, 제2의 할리우드로 불릴 만큼 영화산업이 번창한 나라, 노벨 문학상, 평화상 외에도 노벨물리학상(2회), 의학상, 경제학상을 수상한 나라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고질적인 가난, 높은 문맹률, 공공 인프라 부족등 열악한부분이 많은 나라, 결혼지참금 때문에 매년 여성이 목숨을 1만명씩 잃으면서도 하원의 33%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안을 상정해 놓고 있는 아이러니의 나라, 선거때는 혼탁해도 한번도 군부 쿠데타가 없는 나라, 이렇듯 인도에 대한 급변한 변화의 이미지가 우리 앞에 있지만 내용의 동일성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다.
특히 서구인이 오리엔탈리즘을 추구하며 여전히 신비와 명상을 바탕화면으로 하고 싶은 것은 과학에 대한 도전이며 복고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실제로 이집트, 그리스, 잉카 등의 문화들이 단절되고 중국조차도 고유의 유산을 거부하려고 하는데 인도는 수천년 동안 인류문명을 유일하게 보전하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양복식은 서양복식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20세기 초 Paul Poiret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말의 에스닉 룩(Ethnic Look)에 이르기까지 오리엔탈리즘은 서구복식에 있어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 민속의상이 현대 패션에 도입되어 나타나는 경향을 모더니즘의 영향권 아래 기능적인 서구 복식의 세계 각국의 보편적인 복식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의 전통복식은 점차 일반대중들의 평상복으로는 착용되지 못하고 의례복으로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도 인도는 그들의 전통의상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자부심을 느끼며 전통스타일을 굳게 지켜오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따라서 인도 민속의상을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과 관련지어 그 특성과 요소를 살펴본 후 이러한 인도 민속의상이 현대 패션에 나타나는 경향을 분석해 봄으로써 향후 패션의 흐름을 예측하고, 나아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민속의상을 현대패션의 새로운 모티브로 활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Ⅱ. 인도의 문화적 배경
인도문화라고 하면 우리들은 인도가 생성해 낸 고도의 문화산물로서의 철학, 종교, 사상, 문학, 미술, 등을 생각해 낸다. 고대부터 여러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페르시아나 그리스 그리고 중국사람들과 같은 인도의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도라는 하나의 총체성은 그 경계가 인더스 강과 히말라야 그리고 벵갈해와 아라비아해로 한정되는 마름모꼴로 정해졌다. 인도의 고대 사상가들은 남북으로는 히말라야에서부터 인도양에 이르는 그리고 동서로는 벵갈해로부터 아라비아해에 이르는 지역을 하나의 정치, 문화적 단위로 생각하였으니 국내외적으로 인더스강 동쪽의 땅 인도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적 단위로 오랜 동안 유지되어 왔다. 인도는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그 경계가 자연스럽게 정해진 문화의 단일체였다.
1. 역사적 배경
‘인도’라는 이름은 지금의 인더스강의 옛 이름인 신두(Sindhu)에서 유래되었다. 기원전 2500년부터 인더스 문명은 서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문명과 많은 접촉을 하면서 인더스 지역의 이름이 서아시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5세기경에는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서쪽경계를 이 지역의 이름 ‘신두’에서 따 ‘힌두’라고 불렀다. 신두가 힌두로 변한 것이 페르시아인들이 s음을 h음으로 발음하여 그리되었는지 아니면 고대 페르시아어의 공통조어에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후 알렉산더의 침략이후 그리스인들은 힌두를 ‘인두’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영어화되면서 Indus와India가 되었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印度는 근대 유럽어에서 사용되는 ‘Indo'를 가차한 것이다.
인도의 고대역사는 이렇듯 기원전 2천년전 무렵의 아리아족의 서부인도 침입으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기원전 천년경(B.C 1000)에는 그 지배권을 동쪽으로 확산시켰고 기원전 6세기경에는 몇 개의 국가를 형성하고 기원전 4세기경에는 찬드라굽타(Chandra-kupta)의 마우리아왕조(Maurya)를 창건. 이 왕조의 아소카(Asoka)왕은 불교를 보호하여 불교국의 면모를 유지했다. 그 후 힌두교가 일어나면서 인도문화가 변하기 시작하여 카스트제도(Caste)라는 신분계급제도가 생겨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성립된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사회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모든 행동과 사고를 제약하는 계기가 되었고, 의복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8세기에는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그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13세기에는 델리(Delhi)에 이슬람왕조를 건설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무굴 왕조가 매우 번성하였고, 그 유적들은 인도 각지에 남아, 그들의 영화를 생각케 하는데 그 중 타지마할궁은 말할 수 없이 우아한 건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 후 무굴왕조(Mogul)의 아우랑제브(Aurangzeb)왕이 죽으면서 왕조가 쇠퇴하자, 동양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유럽 열강들의 침입이 있었는데, 이 중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때 서구 열강의 침입은 인도문화의 복식에 서구풍이 가미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영국은 인도를 자국번영의 기틀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1919년 간디(Gandhi)의 독립투쟁이 시작되어 1947년에는 인도연방과 파키스탄(Parkistan)으로 분리되어 독립하였다.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로, 종교적 대립을 극복하지 못한 분리 독립을 한 것이다.
인도는 힌두교의 영향이 강하여 복식에도 그 특징이 많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2. 사회적 배경
인도는 국토가 넓고 클 뿐 아니라 6억 가까운 인구를 가진 나라로서 신비한 정신문화에 비해 후진 사회의 양상을 지울 수 없는 나라이다.
지리적 여건으로, 기후는 아열대성으로 낮에는 무덥고 밤에는 아주 추운 극단을 가진 나라로, 공용어만 해도 14종이나 되고 피부색이나 골격이 다른 많은 인종이 있다. 또한 종교의 복잡성, 카스트(Caste)에 의한 계급제도, 지역적인 이질성 등이 있어, 가는 장소마다 전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수도인 델리(Delhi)가 올드델리(Old-Delhi)와 뉴델리(New-Delhi)로 나누어져서 서로 양극현상을 보이듯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하게 보이는 문화를 가진다. 그렇지만 인도는 분명히 하나의 통일된 체제안에서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져다 주는 문화적 요체는 카스트(Caste)이다. 아리아인들이 마련한 카스트제도는 정복민족이 피정복민족에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사회적 질서이다. 이 제도는 힌두교에서 사용하며 종성제도(種姓制度)로도 불리며, 4계급으로 구분된다. 4계급이란, 제1계급인 브라만(Brahman), 제2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ya, 왕족, 무사), 제3계급인 바이샤(Vaisya, 평민), 제4계급인 수드라(Sudra, 천민)로 나뉘며 이것은 피부색 뿐아니라 의복에까지 종류, 색, 장신구, 입는 방법에까지 제약을 가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엄밀한 종성의 구분이 없었지만 후에 나타난 종성의 범어(梵語)인 바루나(Varuna)는 빛을 뜻하며 백인인 아리아인과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 카스트제도는 힌두 사회의 ‘통일성 속의 다양성’ 실현의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의 통일된 체제의 상자안에 카스트라는 세분화된 지역인구의 기본접근법을 통해 하나의 ‘인도’로서 그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인도는 민족 수만큼이나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언어는 인도어만도 250여가지 이상이고 방언들도 500여가지가 있다. 특히 펀잡어(Punhab), 비하르어(Bihar), 벵갈어(Bengal), 오리아어(Oria), 구자라트어(Gujarat), 타밀어(Tamil), 테레그어(Teleg), 카나라어(Kanara) 등이 중요 언어들이다.
인도에는 종족이 많은 만큼 축제, 행사가 많고 춤의 종류도 많다. 특히 바라트나티얌(Bharat-Natyam) 무용은 전통적인 인도무용으로 매우 특이하다.
또한 세계에서 금을 가장 좋아하는 인도인들, 그들의 금 사용량에 따라 세계 금시장의 가격이 휘청거릴 정도로 인도여인들은 몸에 다는 장신구가 많다. 귀걸이, 목걸이, 팔지, 발찌(잔지바르라고 하는데 여러개의 방울들), 반지, 심지어 코걸이까지 장신구로 쓰이고 이마에 홍점(Kum-Kum)을 찍어 행복의 상징으로 화장을 하며, 의복에도 이런 여러 가지 문화적인 다양성이 표현되어 종교, 계급에 따라, 입는 방법, 종류, 재료 사용이 다르다.
3. 종교적 배경
인도의 고대문화는 유럽이나 중국등 다른 문화와 비교해 볼 때 종교가 차지하는 위치가 상당하였다. 그렇다고 인도의 고대 문화가 전적으로 사변적(思辨的)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대 인도인들이 영(zero)무한대, 윤회, 동물과의 대화, 비폭력, 아라비아 숫자 등을 발달시켜 세계의 정신문화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인도는 고대 사회에서 그리스와 더불어 유일하게 민주주의 정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수학 의학 천문학 화학 공학 등과 다양한 과학기술 수공업을 발달시켜 인류문명 발달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인도의 발달된 고대 문화는 아시아에 널리 전파되어 그곳에서 고대 문화형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인도와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 접촉에는 종교와 더불어 무역이 중요한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불교를 통해 인도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와 많은 문화를 공유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인도 문화는 아시아 문화의 주요 원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인도 유적의 대부분은 종교와 연관이 깊으며, 남인도에서는 어디서든지 힌두교 사원이나 이슬람 사원이 눈에 띄는 것으로 종교적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인도 역사는 힌두교와 모슬렘의 싸움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2종파는 사이가 나빠 힌두교도는 인도를, 이슬람 교도는 파키스탄을 세우기까지 했으며 힌두교도들 중 보수주의자들은 인도를 힌두스탠(Hindustan) 이라 부르는데 이것을 힌두교도(Hindu)+땅(Stan)이라는 뜻이다.
이런 종파의 서로 다른 성격이 의복이나 복식 전반에 제약을 가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으며 특히 시이크교도(Shik)인이 터반을 꼭 착용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예절이며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로 다양한 면이 종교에는 극단적인 금욕주의 고행자무리가 있는 반면, 풍성한 에로티즘의 추구도 중요한 측면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표현들은 불교건축에 풍만한 여성상이 그려지고 힌두교에서 방대한 수의 미투나(Mithuna)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미투나는 남녀의 성적 결합을 표현하는 회화나 조각들을 말하며, 이 조각에는 정신적 해탈과 육체적 향락이 갖는 극단적인 것이 서로 일치한다는 일원론적 철학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으며, 신이 많은 인도인지라 철학적 사색이 풍성하게 여러 가지 조상, 불상, 미술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듯 인도는 세계4대 문명발상지의 하나로서 또 부처의 나라로서 동양의 정신 문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되었고 중국을 위시한 극동아시아에서 꽃피었던 문화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종교적인 측면들은 의복분야나 제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Ⅲ 인도 민속의상의 특징
1. 형태와 특징
인도의 의복에도 정-부정의 의식이 개재되어 있다. 우선 그것은 바느질의 유무와 관련하여 바느질을 하지 않는 옷을 정(淨)의 의복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바느질을 하지 않는 옷으로는 여성들이 입는 사리(sari) 와 남성들이 입는 도티(doti)를 들 수 있다. 그 옷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정과 부정의 의미가 개입된다. 마치 그들의 식사가 손으로 먹는 것이 정의 방법이듯이 사리를 입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맨살에 입는 것이 정의 방법이다. 그래서 여성이 사리를 입는 경우 과거에 벵갈 등지에서는 상반신 특히 가슴을 가리는 것을 격이 낮고 실례되는 것으로 간주했고 맨살 위에 두르는 것을 정결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이렇듯 인도의 힌두스탄 평원에서 인도인은 인도의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곧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방한용 각반을 벗고, 이 땅에 한 걸음 먼저 정착한 사람들을 본 따 도티(doti)라는 무명천을 허리에 두르는 것이 생활하기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후가 추워지는 겨울 몇 달은 그 위에다 쇼올로 목과 어깨를 덮었다.
인도의 의복은 드레이퍼리의 유형에 속하는 사리(sari)가 대표적인데, 이 드레이퍼리 형식의 의복은 그리스, 로마 뿐만 아니라 고대사회에서는 널리 애용되었고, 종교복중에서 가사의(袈裟衣)로서 현재 잔존되어 있다.
이 옷 형태(드레이퍼리)의 특징은 직조법과 염색의 정교함을 들 수 있는데 색과 염색, 자수 등에 의해서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두르는 방법과 방향에 따라 다른 복식미가 발생하는데 이 형태의 특징은 인체에 전혀 부담감을 주지 않고 자연스러운 육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데 있다.
즉, 이 드레이퍼리 유형의 의복에는 허리에 매는 형, 매듭으로 거는 형, 머리를 끼워 넣어 입는 형, 전개형, 체인형이 있는데, 도티는 문자 그대로 허리에 매는 형이고, 사리는 매듭으로 거는 형이다.
이 옷입는 방법의 면에서 생각하면 보다 단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요포인 도티조차,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입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크게 구분하면, 천의 한쪽 끝을 가랑이 사이에 끼워넣어 등에서 끼워넣는 캇챠형과 넉넉하고, 헐겁게 하반신을 휘감겨 있는 형으로 나뉘어진다. 후자인 웨슈티형은 남인도의 힌두나 펀잡의 시크 교도, 또 무슬림의 요포 렝기 등에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과 체형형에 속하는 바지나 파자마를 사용하는 북인도나 서인도의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거의 전 인도적으로 캇챠형의 도티를 입고 있다.
랑코티 즉 살바를 사용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부족민인 하층 농민만이 해당되나, 그것은 금욕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원래 수행 승려 등이 자주 입은 것이다.
지금의 남성은 무슬림의 복장이나 유럽에서 영향을 받아 넓은 의미의 셔츠류나 깃이 없는 쿠르다를 입게끔 되었지만, 고대에 있어서는 상반신도 나체인 그대로 이거나, 어깨 걸이의 짜다르를 걸치는 정도였다.
또한 인도의상은 직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강조하고 장신구로 치장하는 것이 특징이며 현재에도 많이 입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방계열은 천을 몸에 두르는 형식으로 깃은 없고 목둘레가 깊이 파여져 있다. 직물은 파인애플, 밀짚, 면, 마 등 식물성 섬유를 주로 사용하고 실크도 쓰인다.
또한 인도는 지역이 방대해서 각 지역에 따라 입는 의복도 다양하다.
인도는 민족복을 가장 많이 입고 있는 민족의 하나로 오랜 세월을 영국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많은 것이 서구화 되었지만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고, 종교에 의한 결속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그들의 옷을 21세기도 고수하고 있다.
2. 인도 복식의 문화적 배경
인도는 열대 및 아열대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속하며, 많은 종족이 혼합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복잡한 의복형태를 보이고 있다.
사리에도 어느 정도 옷감이나 색상, 무늬 등에서 패션의 경향이 드러나지만 특히 펀자비 드레스에는 유행이 민감하게 반영된 듯하다. 거기에 또 그녀들은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하늘하게 앞에서 뒤로 길게 늘어뜨린 가볍고, 가는 스카프를 빠뜨리지 않으며, 그런 반면 완전히 양장으로 전환해 버리는 일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신들의 이상을 방관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앵글로-인디언으로 불리는 즉 영국인과의 혼혈로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복장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출신과 특성에 의한 귀속 계층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사리는 늘 전 인도 여성들에게 입혀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지역 차의 문제가 있고, 또 계층에 따라서도 옷을 입는 모양이 달라지는 등 규정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도인에게 양장이 환영받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앞가슴을 벌어지게 하는 것은 물론, 정강이를 들어내는 일이 종종 있어, 그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데 기인한 것이다. 어릴 때는 아름다운 다리를 살짝 스커트 밖으로 드러내고 뛰어 다니는 여자들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리로 복숭아 뼈까지를 감싸버린다.
이는 앞서 논 한 것처럼 인도 전 지역에 대충 통용되는 정․부정의 구별이 엄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식사의 경우에는 순수하게 손으로 먹는 것이 가장 깨끗하다고 하지만, 의복을 입는 경우에도 우선은 맨몸의 상태에서 생각한다. 예를 들면 힌두의 사이파에 해당하는 일부 수행자나 자이나 교의 공익파의 승려는 문자 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깨끗함보다는 오히려 그 교의상에서 무일물(無一物), 무사물(無私物)을 나타낸다고 하는 매우 극단적인 예이다. 자이나교라고 해도 그 교리를 지나치게 행하는 파가 백의파를 형성하는 백색 옷을 걸치고 있고, 힌두의 수행자나 브라만은 흰색의 긴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수행(修行)중인 사람의 의복은 최소한 필요한 것만 입는데, 그 하나가 랑고티(Langoti)이다. 랑고티는 영어의 로인클로스(Loincloth), 브리치클로스(Breechecloth), 브리클로스(Breecloth)로 로인(Loin), 브리치(Breech)는 허리, 힙을 가리키며, 클로스(Cloth), 클로트(Clout)는 원단을 표시한다.
힌두교에서는 사리처럼 재봉솔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옷이나 나체를 ‘淨衣’라 하며 현재까지도 종교적 행사 같은 특별한 행사에는 재봉하지 않은 옷을 사용한다. 원래 허벅지 사이를 통과하는 것이 금욕을 표시하는 것으로 수행 중에 입도록 한다. 봉제선이 없는 도티도 정의의 일종이다. 옷을 입는 경우에는 오히려 나체로 다니는 것을 기피하고, 그 대신에 성스러운 색인 흰색이 강조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발은 반드시 맨발이 정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죽제 샌달이나 구두 등을 신고 성지에 들어가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의복을 입을 때에는 반드시 그것이 정결함이 있어야 함으로, 거기에는 재봉선이 있어서는 안된다.
사리는 어느 한 곳도 재단이나 봉제를 하지 않은 채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이 중단됨이 없이 이어져왔다. 단순히 아름답다던가 기후 풍토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종교라는 커다란 배경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인도 복식의 종류
가. 여성복
1) 상의(Bodice)
* 앙 가 (Angya) : 뒤에서 끈을 매는 상의로 앞가슴에 둥근 캡(Cap)을 가지는데 이것을 카토리(Katori)라 한다. 레이스를 댄 짧은 소매는 아스틴(Astin)이라 하여 카라 부분은 가트(Ghat)라 하고 그 가장자리는 일반적으로 도리(Dori:비단실)로 장식한다.
* 초 리 (Choli) : 허리부분을 노출하는 짧은 상의로 앞에서 끈이나 단추로 조이는 옷이며 반팔과 긴팔, 소매 없는 것 등의 3종류가 있다.
* 바 냔 ( Banyan) : 남녀 구별이 없는 끈이나 단추가 없는 편직물 상의.
* 파토리(Fatori) : 앞이 트인 소매 없는 조끼.
* 마하람 (Mahram) : 유방을 조이는 상의.
* 마하람-쿠르트 (Mahram-kurt) : 상의와 쟈켓을 모두 포함하느 것으로 3종류가 있다.
* 콰다리(Quadari) : 스커트위에 입는 상의이다.
* 니마스틴(Nimastin) : 짧은 소매의 쟈켓.
* 카마리(Kamari) : 허리 아래까지 길이의 쟈켓.
2) 하의
여성의 하의에는 스커트인 가그라, 속에 입는 패티코트, 바지인 샬와,쥬디다르 이다. 가끔 여성도 남성의 도티를 입기도 한다.
* 가그라(Ghagra-스커트) : 북인도에서 많이 입는 스커트로 대개 플리츠주름, 개더, 플레어주름이 있다. 길이는 발끝까지 오는 것이다. 인기있는 것으로는 모란꽃색의 가장자리배색이 있는 것이다. 가그라는 패티코트와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하며 끈으로 허리에 묶거나 은벨트를 하기도 한다. 허리띠중 독특한 것은 네파(nefa)로 폭이 2-4인치인 것이다.
* 바지(Trousers) : 인도바지는 파자마와 유사하며 남녀 모두 입는데 여성은 샬와(shalwar) 로 알려진 베기바지를 구르다(kurta)와 같이 주로 입는다.
a. 샬와 (shalwar) : 허리에서 다리까지의 길이로 주름이 많이 생기고 재단시 2배의 폭으로 잘라 주름을 만든다. 터키식 하렘바지의 변형으로 두껍게 자수를 놓은 면레이스를 대기도 한다. 여성의 것은 남성보다 훨씬 부드럽다.
b. 쥬디다르(chudidar) : 위는 넓고 아래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바지이다. 허리에서 무릅까지는 넓고 아래는 종아리에 착 붙어 복사뼈에서 수평으로 주름이 잡혀 있다.
3) 사리(Sari)
사리는 가장 전형적인 여성복으로 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의복이다. 13-14세기 힌두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의상이었으며 신체를 감싸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입는다. 동시에 이것은 인도의 계급제도에 따른 계급을 표시하기도하며 상류층은 금을 사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기도 했다.
4) 구르다(kurta)
구르다 혹은 gurda 라고도 하는데 길고 느슨한 튜닉형 겉옷이다. 이것은 대개 완쪽 겨드랑이의 단추나 고리를 사용하여 잠그게 되어 있고 허리에는 두 개의 다아트가 있어 몸에 알맞게 맞는 옷이다. 길이는 무릎길이로 아래 양옆 30㎝ 정도 트임을 주어 활동에 여유를 주고 목부분은 대개 둥글거나 네모진 것이 많으며 가장자리에 수를 놓기도 한다.
나 . 남성복
남성은 카메즈(kameez) 혹은 쵸가(choga)라고 불리는 몸에 꼭맞는 상의와 도티라 불리는 기본하의, 튜닉형 셔츠에 바지( shalwar, 혹은 chudidar)를 입고 머리에는 켑(cap)이나 모자 대용인 터반(Turban)을 착용하는 것이 기본 의상이다. 물론 장식도 하지만 여자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 기타 상세한 것은 “인도 민속의상에 관한 고찰” 논문 p37 참조)
Ⅳ 현대패션에 나타난 인도 민속풍
1. 20세기 패션에서의 오리엔탈리즘 도입과정
‘Orient'는 라틴어의 오리엔스(Oriens)가 그 어원으로 ‘해가 솟는 방향’, ‘동방’을 의미한다. 로마인이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의 동방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다.
‘Orientalism'이란 오리엔트 세계에 대한 동경 또는 취미, 다채로운 이국정서(Exotism)에 대한 기호를 가리킨다. 특히 근세 유럽에 있어서 19세기 낭만주의의 한 경향으로 문학 예술상에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오리엔탈리즘 복식이란 아시아와 북부아프리카 지역의 민속복식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독특한 복식요소들이 서양복에 도입되어 민속적이며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표현되는 복식을 말한다.
(1) 20세기 초반(1900 - 1930년대)
20세기초 유럽은 경제적 발전을 배경으로 제국주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었다. 식민지에 대한 경제적 침투와 더불어 서유럽의 복식은 국제적인 복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1차대전 직전의 수년간을 Belle epoque(좋은 시대, 1907 - 1914)라 부르고 있다. 1909년 빠리에서는 Diaghilev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이 이국적 분위기의 세헤라자데(Seherazade)를 공연하였다. 이 공연의 디자이너인 Leon Bakst는 무대장치나 의상에서 오렌지, 감청, 초록, 노랑, 담홍색, 혹은 금박이나 금속장식 등 눈부실정도로 선명한 색채를 구사하여 의상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한편 이시기에 독일에서 일어난 기능주의는 의상계에도 영향을 미쳐 기능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Art Deco양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Leon Bakst의 영향을 받은 Art Deco시기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인 Paul Poiret는 구상의 원천을 동방에서 찾아, 호블 스커트(Hobble skirt), 하렘 스타일(Harem style), 미나렛 튜닉 스타일(Minaret tunic style), 기모노 스타일(Kimono style), 소매없는 Coat, Turban등 새롭고 기이한 Mode를 계속 발표하였다. 그는 모더니즘의 수단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사용하여 형태에 있어서는 단순하고 색채에 있어서는 원색을 추구함으로써 현대 패션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쁘와레의 색채는 모드계에 있어서 ‘현대성’을 부여한 요인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쁘와레에게 있어서 최초의 오리엔탈 모드는 기모노 스타일이었다. 후에 ‘孔子’라고 명명했던 이 기모노 Coat는 오랫동안 가장 주된 스타일로 정착되었다.
이 시기에는 여러 국가들이 패션의 요소를 제공하였으므로 의복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물건에 동양적인 이름이 붙게 되었다. 기모노형 오버코트와 자수장식의 중국 쇼올, 그 외 핸드백, 신발, 장신구 등에 동양풍 디테일이 많아졌고 파자마가 여성들의 이브닝웨어와 비치웨어로 유행하였다. 헐렁한 상의와 함께 입는 바지의 형태는 중국풍과 인도풍, 여성과 남성의 혼합형태이며, 하렘(Harem), 죠드퍼스(Jodhpur)등의 바지가 나오게 되었다.
(2) 20세기 중반(1940년대 - 197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여성복은 남성복과 같은 각진 어깨, 짧은 스커트의 Tailored suit style 인 Military Look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차대전중 추위를 이기기위해 인디언숄을 애용했으며 물자절약을 위한 디자인으로 장삼(長衫)이나 좁은 바지같은 직선적인 중국복식의 영향을 받은 복식을 볼 수 있었다. 1951년 Dior와 Balenciaga는 중국스타일을 선보였는데, 만다린 칼라, 직선적인 옷단끼리 마주 닿는 재킷(Straight edge-to-edge jacket), 쿨리햇(Coolie hat)이 그것이다. Dior의 뉴룩(New Look)에 맞추어 밀짚으로 만든 원추형의 쿨리햇은 중국의 노동자들이 쓰던 모자형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성세대의 권위에 반발하는 히피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들은 반항의 상징으로서 인도풍의 화려한 의복과 과도한 장신구를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자신들의 평화추구를 나타내기 위해서 Bead를 사용하였고, 민속적인 로브(Robe), 푸른색의 데님(Denim)을 입고 머리에 꽃을 꽂거나 가슴을 노출시키는 등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민속풍은 기존의 유행에 거역하는 Anti-fashion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1960년대 이전의 복식유행이 상류층의 것을 하류층이 모방하던 하향전파중심이었다면 1960년대 이후에는 히피와 같은 하위문화집단의 영향이 상류층으로 상향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Yves Saint Laurant은 이러한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1967년 아프리카 드레스를 발표함으로서 민속적인 복식이 오뜨꾸뛰르에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Takata Kenzo와 Issey Miyake등 일본디자이너들의 파리진출, 미국과 중국의 수교등의 영향으로 동양풍이 유행하였다.
1974-75년은 입는 방식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Layered Look과 Loose Look, 그리고 아프리카와 동양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마된 오리엔탈룩이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기까지의 서구모드에 영향을 미친 동양요소의 영향은 첫째, 평면재단, 넓은 소매, 폐쇄된 여밈형식, 동양특유의 무늬 등 기모노 디테일의 직접적인 영향과 둘째, 자유로운 재단, 레이어드 룩, 독특한 소재, 셋째 아방가르드의 정신아래 직물을 통한 은폐, 노출의 연구와 동양 의복에 대한 고려 등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3) 20세기 후반(1980년대 - 1990년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변혁을 경험했던 20세기는 그 말기에 이르러 또 다시 국제질서에 예측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학기술의 혁신에 따르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는 연쇄반응식으로 전 영역에 걸쳐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인간관, 세계관도 크게 변화시켰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1980년대의 패션은 세계각국의 복합된 문화의 표출과 새로운 디자이너들의 대거등장으로 더욱 다양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일본의 경제력 강화로 인한 지위상승과 중국의 문호개방 등으로 인해 동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패션계에서는 70년대에 충격을 주었던 일본디자이너들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Issey Miyake, Yohjl Yamamoto, Kawakubo, Rei, Takata Kenzo 등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Japanse Look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이들은 서구패션의 의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려 검은색 중심의 휘감기, 두르기, 매기, 걸치기 등 다양한 레이어링 방식을 사용하였다.
198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주요한 패션테마는 ‘동양풍’이었다. 1987년 말 제작된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에서 보여준 중국황실의 웅장하고 화려한 복식은 서구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신비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의 패션정보지인 Les cahiers de tendance de promosty에 소개된 이러한 동양풍의 경향을 보면, 화려한 쟈카드 원단을 사용, 동양적 모티브의 문양, 정열적인 색상, 드레이프성을 강조한 모자와 두건, 몸을 휘감아 둘러싼 랩(Wrap), 루주룩(Loose Look)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2. 현대패션에 나타난 인도민속풍 분석
각 나라 민족, 문화권에 따라 전승되어온 독특한 의미와 형태를 지닌 민속의상을 통해 서로 다른 고유문화를 지닌 각 문화권의 미적 감각을 인식하여 이를 여러 디자이너의 작품을 통해서 현대의상에 적합한 디자인으로 개발되고 있다.
민속풍의상을 계속 발표하고 있는 로메오 지글리(Romeo Gigli)는 ‘94 S/S 컬렉션에서 사리의 형태를 응용한 다양한 의상들을 발표하여 패션계에 인도열풍을 불러일으켰다.<사진41 참조>
한편 아방가르드 의상의 선두주자인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rltier)는 ‘94 S/S 컬렉션을 통해 인도의 민속의상과 장신구를 전위적인 분위기로 재현함으로써 에스닉 룩(Ethnic Look)의 표현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42참조>
이들 두 사람은 인도라는 공통분모에서 출발했으나 그 전개방식에 있어서는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세계 각 국의 민속의상이 현대패션에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패션에 나타난 인도풍 의상을 형태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인도 민속의상 중 그 가치가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리(Sari)의 형태를 응용한 드레이퍼리(Drapery)형이 대표적이다. 인도남성복의 파자마, 쿠르다, 튜닉, 팬츠 등을 이용한 겹쳐입기 방식은 서구 패션의 레이어드 룩(Layered Look)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근래에 들어서 급속히 유행하고 있는 허리를 노출하는 타이트한 짧은 상의는 쵸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샤르와르(Shalwar)형의 폭넓은 바지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의복으로서 현대패션에 도입된 인도풍 의복형태 중 하나이다. (그외의 다양한 스타일들은 p49 참조)
전통사리가 인도의 기후조건과 사회환경 종교적 관념 등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인도인의 의식을 대변해주는 것이었다면, 현대 패션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사리형태의 의복은 사리 속에 담겨진 의도적인 의식을 제외하고, 그 형태만 차용하여 현대인의 의식과 접목시킴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표현방식인 패러디(Parody)기법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 색 상
인도 전통의상의 색상은 흰색을 기본으로 하여, 일명 인디언 레드(Indian Red)라고도 불리는 붉은 색, 인디고 블루(Indigo Blue) 등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상이 함께 사용되었다.
20세기초 Paul Poiret는, 서구여성복의 형태적인 면에서 코르셋을 제거함으로써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색채에 있어서도 강렬한 이국적인 색채를 도입하여 Mode의 현대화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Leon Bakst 의 영향을 받은 뽈 쁘와레에 의한 새로운 색채의 도입은 고갱을 중심으로 한 후기인상파(Post Impress-ionism)와 마티스를 중심으로 한 야수파(Fauvism)의 화려한 색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강하고 단순한 형상을 적절히 표출하기 위해서 밝은 색상과 강렬하고 뚜렷한 색채대비를 구사하였다.
20세기말에 나타난 인도풍 의상에서는 이러한 Vivid tone의 화려한 색상과 함께 후퇴되고 억제된 듯한 Deep tone, Strong tone의 색상계열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는 오래된 벽화의 색이나 흙, 나무 등과 같은 자연의 색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색채이며, 특히 인도풍의 의상에서는 Deep tone의 Red가 중요한 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색채에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금사를 사용하여 자수나 그 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혼합해 주어 강한 색채 대비 효과와 함께 전위적인 분위기마저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현대패션에서 나타나고 이는 인도풍 의상의 색상 경향은 세 가지도 압축될 수 있다.
첫째 전통 인도의상의 색채인 흰색을 기본으로 한 원색적인 색상을 그대로 현대의상에 수용한 것.
둘째 산업발달의 결과로 개발된 새로운 염료인 형광염료를 사용하여 네온불꽃에서 불수 있는 것 같은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네온 색상을 사용한 것.
셋째 Vivid tone에서 채도를 약간 낮추어준 Deep tone의 차분하면서도 침체되지 않은 색상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특히 Deep tone이나 Strong tone의 색상은 현대 패션의 민속풍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고대의 유물이나 벽화의 빛 바랜 색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런 색감은 현대인들의 의식 저변에 깔린 자연 회귀 심리를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염색과 직물
인도는 면직물과 견직물의 세계적인 산지로서, 특히 무명 방염포인 사라사는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대표적인 직물로서, 사리를 비롯한 의복이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사라사의 다양한 문양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되어 프린트 직물의 개발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금실을 넣어 짠 화려한 견직물도 의복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인도의 전통의상이 면직물과 견직물을 주 소재로 사용하였던 것에 비하여 현대패션에 나타나는 인도풍의 의상은 전통적인 소재와 더불어 다양한 신소재를 도입하고 있다.
“재료로부터 새로운 형태가 형성되어지며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제작기법과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도출한다.”라는 말에서처럼 재료는 중요한 조형요소로서 작가가 의도하는 표현형태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산업의 발달로 인한 합성섬유를 비롯한 다양한 신소재의 출현은 민속풍 의상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새로운 조형미를 표현하게 되었다.
쵸리형태의 짧은 상의에 신축성 있는 소재를 사용하여 신체에 밀착시킴으로서 새로운 표현방법을 제시하고 있는것도 (사진62참조) 산업화의 결과로 생긴 이러한 신축성 있는 소재는 현대패션에 많은 새로운 시도들을 가능케 하고 있으며, 마치 Body Painting을 한 것 같은 이런 의상은 인도민속의상에서 표방했던 에로티시즘과는 다른 각도에서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Body Conscious라는 방법으로 인체의 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고대 인도의 직물에 사용되었던 문양들이 현대패션에 도입되어 나타나는 것도 중요한 흐름중 하나이다. 사라사에 사용된 문양을 현대의상에 도입한 것도 인도의 고대 직물문양은 그 정교함이 현대의 문양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사진63참조)
패이즐리 무늬는 에스닉 프린트에 있어 중요한 패턴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페이즐리 문양을 이용한 변형문양으로 깊이 있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많이 연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진65참조)
이와 같이 페이즐리 문양에서 보여지는 리드미칼한 선의 흐름, 색상, 크기, 배열, 표현재료와 방법 등이 조화를 통해 다양한 분위기로 연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염색기법이 현대직물에 도입되어 토속적이고 수공예적인 느낌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다나(Bandhana)나 혹은 춘리(Chunri)라고 불리는 타이다이(Tie-dye)기법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강조하는 에콜로지룩(Ecology Look)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염색기법이다. 이것은 다른 염색에 비해 Hand Print의 느낌이 강하게 나타나므로 기계적인 정교한 날염문양에 비해 거칠고 투박하지만 인간의 손길이 가해진 자연스럽고 소박한 느낌으로 인해 각광받고 있다. .
바틱염은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이 널리 알려져 있는 주산지이지만, 그 원류는 인도이다. 남인도 지방의 바틱은 17,18세기에 절정에 달하여 자바, 수마트라, 북인도 및 페르시아, 유럽에 이르기까지 수출되었다.
구형의 용기가 달린 펜을 통해 밀랍을 흘러내리게 해서 밀랍을 바른 부분을 염색이 되지 않게 함으로서 문양을 만들어내는 이 염색기법은 세밀한 묘사를 가능케 하여 정교한 직물문양 개발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슬람풍의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페이즐리 문양같은 유동적인 곡선을 사용하는 문양을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염색기법이었다. 서구에서도 널리 성행하게 된 바틱염은 현대의 프린트 기술 발달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진 70참조)
염색과 직물의 여러 가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를 비롯한 동양 민속복식이 형태적인 면에서 현대패션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한편으로는 현대복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프린트 문양이나 장식 등에서 동양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주는 스타일로 널리 유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서양 복식의 요소를 융합하여 세계적인 정서에 부합하는 공통된 스타일을 창조해 내고자 하는 시도들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대표적 염색기법 가운데 이카트(Ikat)는 천을 직조하기 직전에 실의 일부를 먼저 염색한 후에 직조하는 것으로 시각상 특징적인 것은 문양이 번져 보이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독특한 더블 이카트인 파톨라(Patola)는 비할 바 없는 색채와 기술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구자라트 지방에서는 파톨라가 행운을 가져오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믿었으므로 작은 조각 천을 약으로 사용하거나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착용하기도 한다.
이카트 직물의 자연스럽게 번져나가는 듯한 효과는 현대패션에서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 본래의 이카트처럼 직조 시에 번지는 효과를 주는 것이 있으며
둘째, 날염기법을 이용하여 좀 더 손쉽고 기계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효과를 주는 것도 있다.
셋째, 현대패션에서 점점 각광받고 있는 니트소재를 이용하여 이카트 직물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이 있다.(사진 74참조)
예를 들어 미소니(Missoni)는 이카트 직조법을 니트에 도입하여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된 니트 원사를 편직함으로써 원사의 염색효과와 편직에 의한 조직효과가 어우러져 자연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3) 자수
각 지방마다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자수는 기법상으로는 새틴스티지(Satin stitch)나 미러워크(Mirror work)를 주로 사용하였다. 전통 인도자수가 크게 나누어 양식화 된 문양을 사용하는 지역과 사람이나 ‘꽃 같은 구상적인 문양을 주로 사용하는 지역으로 나누어지는 반면, 현대패션에 도입된 인도풍의 자수는 대부분 양식화된 형태나 간략화 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p57참조)
4) 장신구
인도는 풍부한 금, 은, 보석의 생산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일찍부터 장신구 세공기술이 발달해왔다. 고대 인도의 장신구는 노출이 심한 의복형태로 인한 신체 노출부위를 가려주면서 동시에 단순한 의복의 형태 때문에 충족시키기 어려웠던 장식적인 효과를 살려주기 위해 극도로 과장되게 사용되었다. 고대 인도의 목걸이나 허리벨트가 의복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과장되었다는 것에서도 이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장식했던 인도의 장신구는 종교적인 관습과도 연관이 있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장식이 민속풍의 등장과 함께 현대 패션에서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는데 장식성이 강한 인도의 장신구는 복식 전반에 걸쳐 모더니즘으로 인해 무시되어왔던 인간의 원초적인 장식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p59참조)
3. 인도 민속풍에 나타난 현대패션의 경향 분석
현대의 모더니즘 의상이 자연스러운 의복으로부터 인간을 격리시켜 인위적인 형태 속에서 인체를 구속하게 된 것과는 달리 인도의 의상은 부드럽게 걸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자연과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20세기 중반부터 서구의 테일러드(Tailored)형 의복이 전 세계의 공통적인 의복의 형태로 보편화되어 감에 따라 세계의 많은 민족들은 그들의 정서와 풍토에 적합한 민속의상을 외면하고 획일화 된 서구의 의복을 일상복으로 착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변화 된 사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더 이상 서구화된 의복으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하게 된 것이 세계각국의 민속의상에서 힌트를 얻은 민속풍(Ethnic Look)의상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그 아름다움이 널리 소개되어 있는 인도 민속의상은 현대 민속풍 의상의 대표적인 주제로서 현대사회에 적합하도록 형태나 색상, 소재, 장식 등에서 여러 현대 적인 요소들과 절충되어 다양한 양상을 띄고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인도 민속풍의상에 나타난 현대 패션의 경향을 형태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사리(Sari), 오드니(Odhni), 도티(Dhoti) 등으로 대변 될 수 있는 전형적인 드레이퍼리형 의복을 현대사회의 요구에 맞게 간소화, 실용화된 형태로 표현해 주어 새로운 형태미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 가장 주된 경향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사리의 자연스러운 주름효과를 살리면서도 인체의 형태를 따라 원단을 재단하고 봉제하여 줌으로써 착용시 안정감을 주고 거추장스럽지 않게 해준 체형형과 드레이퍼리형의 혼합형태가 있다. 이것은 인도 민속복식을 재구성하여 현대화 된 새로운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리의 두르는 방식을 변화시켜 인체에 안정감 있게 걸쳐지도록 하여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스타일도 있다. 이러한 두르는 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전통 인도 의상의 소재가 면과 견으로 거의 한정되었던 것에 반해 다양한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이미지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남성복인 도티의 이미지를 응용하여 바지와 스커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의 드레이퍼리형 의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지의 활동적인 면과 스커트의 여성스러운 면을 절충하여 우아하면서도 활동성 있는 독창적인 의복의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쵸리(Choli)는 몸에 꼭 맞는 신체 노출형 의복으로 그 간편함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상의가 최근에 들어 여름 시즌을 중심으로 급속히 유해하고 있다. 쵸리의 단순한 형태미를 살려 디테일은 최대한 배제하여 준 간결한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자수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던 쵸리의 수공예적인 이미지를 살려 날염이나, 자수, 비즈 등을 사용하여 더욱 장식성이 강한 이미지로 표현해준 것도 있다. 또한 쵸리의 장식성을 부각시키면서도 심플한 디테일을 활용하여 현대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있다. 신체를 노출시키는 타이트한 쵸리형 의복의 유행은 고대사회에서 자연스러웠던 신체의 노출이 20세기 후반에 와서 다시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서구복식이 인체의 형태를 왜곡시키고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반해서 몸에 밀착되는 소재를 사용하여 의복보다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형태 자체에 과한 관심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르와르형 바지는 대표적인 인도의 영향을 받은 의복 형태로서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나타나고 있는데, 바지의 길이나 폭에 변화를 줌으로써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스타일로 창조되고 있다. 이러한 샤르와르형 바지의 부각은 서구의 복식구성 방법에 인도의 복식형태를 적용시켜 만들어낸 동서양 혼합스타일 경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도의 의상은 흰색을 기초로 하여 여기에 원색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화려한 색채사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도 민속의상이 색상면에 있어 현대 패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인도의 색감을 그대로 도입하여 강렬한 색채대비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카레의 Yellow나 짙은 Red는 기쁨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도의 색상으로 서구패션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던 Yellow나 Red의 강한 원색을 함께 사용하여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여기에다 금색, 은색 등의 메탈릭(Metalic)색상을 동시에 사용하여 히피 패션을 비롯한 현대의 아방가르드의상에 다양한 새로운 색채구사가 가능하게 하였다.
인도의 민속풍의상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색상은 억제되고 낡은 듯한 느낌을 주는 Deep tone이나 Strong tone의 색상군이다. 전통인도의 색상에 비해 채도가 낮은 이러한 색상들은 고대의 유물이나 벽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이러한 유물이 만들어졌던 먼 옛날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현대인들의 의식을 대변하는 색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도는 고대부터 식물을 이용한 다양한 자연염료를 개발하여 여러 가지 색상의 염색을 하였는데 이러한 염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던 고대의 유물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빛이 바래고 낡아서 독특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색상들이 그대로 현대 패션에 반영되어 에스닉 칼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민속풍 의상이 등장하면서 폭 넓게 활용되고 있는 칼라 중에서 충격적인 네온 칼라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종래에는 스키복을 비롯한 일부 스포츠웨어에 주로 사용되었던 이러한 색상들이 드레시한 인도풍의 이브닝웨어에도 사용됨으로써 색채활용의 범위를 넓혀주어 종래의 색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염색이나 직물 분야에서 인도풍 의상에 나타난 현대 패션의 경향은 먼저 인도의 전통적인 염색기법인 타이다이 이카트 바틱 등을 활용하여 거칠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해주어 기계화, 산업화에 의해 밀려났던 수공예적인 요소를 재도입한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현대 패션의 자연주의적 경향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기계 문명에 싫증을 느낀 현대인들에게는 인간의 손길이 가해진 듯한 따뜻한 느낌으로 인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현대 패션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전통문양인 페이즐리 문양을 다양하게 활용한 직물의 등장은 날염 문양 개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정교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조화로 이루어진 페이즐리 문양은 Deep tone의 가라앉은 색조와 결합하여 현대 패션의 에스닉풍 프린트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에스닉풍 프린트느 현대 직물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대두하게 되었다.
Mirror work 이나 푸르가리(Phulkari)자수, 아플리케 등 인도의 전통적인 자수기법을 도입하여 인도적인 이미지를 표현해 주고 있는 현대의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현대 패션경향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첫째는 모더니즘으로 인해 그 동안 무시되어 왔던 의상의 장식적인 요소가 다시 부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둘째는 자수와 같은 수공예적인 느낌이 강한 요소가 현대의 기계문명에 대한 반발로 현대 패션의 중요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셋째는 과거에는 상류층에게 국한되었던 이러한 장식이 대중화됨으로써 외관상으로 보여지는 의복으로는 사회적이 지위나 경제상태 등을 구분할 수 있는 가치기준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풍의 장신구에서 볼 수 있는 현대인들의 장식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과장된 장신구의 사용은 인도인들에게는 생활의 필수품이었던 것이 현대 패션에서는 전위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게 되어 장식의 전위적인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게 되었다. 종래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착용했던 장신구가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장식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됨으로써 보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주관적인 만족을 더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인도풍 장신구에서 주재료로 사용하는 은을 이용한 장신구가 부각됨으로써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이미지의 가공하지 않은 자연상태를 보는 듯한 느낌의 장신구가 현대 패션에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도의 민속적인 요소들은 현대 패션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도입되어 새로운 창작의 발판이 되리라 생각한다.
Ⅴ. 결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패션에 도입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민속의상을 모티브로 한 민속풍(Ethnic Look)은 핵의 위협과 지구환경의 위기, 세기말적인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순수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자극하며 큰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동서양간의 문화전파의 한 양상으로서 인도의 민속적인 요소들이 현대패션에 도입된 양식을 연구함은 현대패션의 흐름을 이해하고 향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서 활용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도의 복식과 문화를간단히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적으로, 과거의 그리스, 로마의 침입으로 인한 드레이퍼리 형식의 사리가 키톤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이슬람족의 침입으로 북서부 지방에서는 체형형의 스타일의 복식이 생겨나 지역적인 독특함이 많이 나타났다.
2. 사회적, 종교적으로, 카스트 제도와 힌두교의 영향이 복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신분이나 계급, 종교의 구별이 가능하다.
3. 여성복은 초리, 페티코트, 사리가 기본으로, 염색 디자인 직조 기술이 우수하여 세계적으로 평가 되고 있다.
4. 남성복은 하의의 도티로 아리안족의 영향과 기후조건이 함께 작용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크교도의 터반은 남성들의 종교, 사회적 지위 등을 표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5. 인도는 축제가 많은 만큼 축제무용 등이 발달하였다. 동시에 전통적인 축제복이나, 무용복이 발달하였다.
6. 장신구는 고대부터 보석이 풍부하여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종교적 영향 특히 힌두교의 영향과 재산 보존의 의미로 착용되었다.
* 이상에서 살펴본 것에서 현대사회에 적합하도록 형태나 색상, 소재, 장식 등에서 여러 가지 현대적인 요소들과 절충되어 나타나는 인도 민속풍 의상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현대 패션의 경향을 살펴보면,
첫째, 형태적인 면에서 체형형과 드레이퍼리형의 혼합형, 도티와 같이 아이템 구분이 모호한 형, 샤르와르풍의 동서양 혼합형태 등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미를 창출하는 것이 현대패션의 주요흐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쵸리형태의 짧은 상의에 신축성 있는 소재를 사용한 의복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의복보다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드러내고자 하는 Body Conscious경향과 신체노출의 증가 경향이다.
둘째, 색상면에서는 원색의 강렬한 색채대비효과를 활용한 의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Deep tone, Strong tone을 중심으로 한 퇴색된 듯한 이미지의 에스닉 색상군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셋째, 색채나 소재 활용에 있어서 고정관념탈피 경향이 두드러져 스포츠의류에 주로 사용되던 네온칼라나 혹은 모피를 비롯한 특수소재들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넷째, 서구복식의 형태 위에 인도의 전통적인 염색기법이나 자수기법 등의 이미지를 도입하여 모더니즘 의상에서 무시되었던 장식적인 요소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으며, 현대 기계문명에 대한 반발로 수공예적인 요소가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상류사회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이런 장식적은 요소의 대중사회로의 하향전파에 따라 의복에 대한 가치 판단 기준이 변하고 있다.
다섯째, 은을 주재료로 한 토속적인 이미지의 장신구가 부각되고 있으며, 장신구의 과다한 사용으로 장식의 아방가르드화가 두드러진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서양패션의 한 요소로서 꾸준히 영향을 미쳐온 동양복식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민속풍(Ethnic Look)이라는 뚜렸한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서구복식의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인도의 민속복식은 현대패션에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1. 현대패션에 나타난 인도 민속풍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 1994 / 전영주
2. 인도의 복식과 문화에 관한 연구
세종대학교 대학원 / 1993 / 명은주
3. 인도 민속의상에 관한 고찰
건국대학교 대학원 / 1987 / 양명순
4. 인도문화 특수성과 보편성의 이해
국제지역문화연구총서 10 / 1999 / 이광수
5. 인도, 21세기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빛 / 2000 / 남상욱
6. 세계전통 복식 / 수학사 / 1998 / 황춘섭
7. 종교복식에 나타난 색채상징연구/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1986/이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