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회화 개척자 정점식 다시 보기 ‘에포케의 선언’ 영남일보 2017-07-12
■ 갤러리분도 탄생 100주년展 박동준 대표 스승 향한 헌정전시 유가족이 소장한 희귀작 등 소개
정점식 작 ‘타천사’
흥미로운 전시 타이틀이다. 갤러리 분도가 극재 정점식(1917~2009)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고 있는 전시 제목이 ‘에포케의 선언’이다. ‘에포케’는 현상학 용어로 ‘판단중지’라는 뜻이다.
고(故) 정점식 화백은 한국 추상화가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계성학교 교사와 계명대 미대 교수를 거친 대구 출신의 대가이다.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정점식 화백에 대해 ‘판단중지’를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
갤러리 분도의 윤규홍 아트 디렉터는 “정점식 화백에 대한 평가는 일종의 의례적인 언술로 반복되고 있다. 새로울 게 없는 바이오그래피와 레퍼런스의 소개는 제사상 앞에서 읊는 축문과 같다”며 ‘새로운 출발’을 제시했다. 특히 “대구 지역의 미술 담론 속에 한정돼 평가가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한 작가를 지역 대표 작가로 띄울수록 그가 가지는 보편적인 미덕이 가려지게 된다”며 ‘에포케’를 선언한 배경을 설명했다.
정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갤러리 분도 박동준 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유가족 및 미술인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에 사는 정 화백의 두 딸은 작품을 보내왔다. 박 대표는 정 화백의 제자이다. 계명대 미대 교육대학원에서 정 화백의 지도를 받았다. 박 대표는 2004년 12월 갤러리 분도 오픈 당시 정 화백이 직접 써준 글을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박 대표는 “한국 추상 미술의 대가를 스승으로 모셨다는 게 뿌듯하다. 전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준 유가족은 물론 미술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스승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위해 당초 예정된 미국 컬럼비아대 리차드 요콤 교수의 개인전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박 대표는 “상업화랑이지만, 스승의 작품을 단순히 판매할 목적으로 전시를 기획하지는 않았다. 품위가 넘치는 스승의 작품을 시민들이 많이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스승에게 바치는 ‘헌정 전시’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유가족이 소장한 작품을 비롯해 ‘두 소녀’ ‘계성학교’와 같은 희귀작, 하얼빈 시절의 드로잉 등이 전시되고 있다. 갤러리 분도에서 정 화백의 전시는 2009년 추모전에 이어 두 번째다. 29일까지. (053)426-5615
조진범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