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디자이너가 대구패션 레벨 만든다. TINnews 2014-06-27
디자이너 육성 위한 환경 조성 디자이너로서 고통 스스로 인내해야 ▲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박동준 이사장 ©TIN 뉴스
취임 두 달째를 맞은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하 패션연) 박동준 이사장을 ‘갤러리 분도’에서 만났다. 갤러리 분도는 박 이사장이 운영하던 P&B아트센터 내에 전시장 겸 갤러리다. 지난해 7월 40년간 몸 담았던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은퇴를 결심한 후 자신의 사옥의 일부를 갤러리로 개관한 곳이다.
박 이사장은 은퇴 이후에도 P&B아트센터 대표, ‘아름다운 가게’ 전국공동대표, 이상화 기념사업회 회장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직을 맡고 있다. 올 4월 패션연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그녀의 횡보에는 변화가 없다. 비상근 명예직이라는 이사징직에 전혀 소홀함이 없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지난 5월 마지막 주에는 패션연만 세 차례 방문했다. 월요일 업무 보고 차, 수요일은 교복 보급사업 관련, 목요일엔 해외패션전시 참가 지원 및 패션센터 활성화 간담회 참석 차 공식 업무를 소화했다.
취임 두 달여째인 박 이사장을 만나 앞으로 패션연이 펼칠 청사진을 들어봤다. 패션연의 나아가야할 방향 “먼저 내년 4월경 개관하는 DTC(대구텍스타일컴플렉스)를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봉무동 본원 옆에 위치했기 때문에 자체 홍보관을 보강해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 결과물을 잘 전시해서 DTC를 방문객들도 본원에도 들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산격동 패션센터 “본래의 업무에만 충실하면 잘 운영이 될 것 같다. 욕심이라면 센터를 학구적인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디자이너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다른 돈을 아끼더라도 강연과 리소스 룸의 책들을 보강하는데는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글로벌 패션 아카데미 “올해는 그것 말고 다른 아카데미를 할 것이다”며 “좋은 디자이너를 많이 길러내는 게 중요하다. 우리(패션연 등)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뿐이지 실제로 하는 건 디자이너들이 치열하게 열심히 해야 한다.” 디자이너의 삶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박동준 이사장 ©TIN 뉴스
“내가 평생해온 디자이너란 직업이 매력적이지만 거기에 감당해야 하는 것도 많다. 디자인 작업이란 게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고통을 겪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봐서는 그 고통을 알지 못하지만 고통 후에 태어나는 게 작품이다.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까하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나다운 걸 만들까, 다른 사람과 다른 나다운 것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까 하는 걸 고민해야 한다. 예술작품이라면 자기 생각대로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힐 수도 있지만 옷을 그렇게 할 수 없다.” 박 이사장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로서의 철학에 대해 “옷은 먼저 사람이 입어야 하는 것이고, 입으면서 생활하고 생각하면서 그 옷을 사랑하게 되어 다시 그 디자이너 옷을 찾게 되고…. 이렇게 경제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옷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을 계속해서 자꾸 내 놓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불합리한 것이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계속해서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이어갔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좋아할까, 요즘 트렌드는 뭘까,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할까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생각보다 계절은 빨리 오고, 트렌드는 빨리 바뀌고, 사람들은 너무 빨리 싫증을 내고 또 새로운 걸 요구하고, 그리고 디자이너는 지치고, 이 계절을 감당하기도 전에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고 그런 게 디자이너란 직업이기 때문에 항상 미리 준비해야 한다.”
“즉 1년 뒤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수시로 디자인을 스케치해두는 것이다. 에스키스(esquisse, 밑그림)를 습작으로 디자인을 그려놓는다. 소매는 어떻게 할까, 단추는 몇 개를 달까 등 틈틈이 에스키스를 해야 한다. 또 소재에 대해서도 틈틈이 연구해서 디자인하고 소재가 매칭 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생각을 거듭하고 이 판단이 틀렸구나 생각되면 기존 걸 엎고 다시 또 시작해야 한다. 두세 번은 물론이고 열 번도 다시 한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단번에 맞을 때는 정말 운이 좋은 거고 보통은 몇 번은 해야 내가 원하는 게 나온다.”
계속해서 자신의 디자이너 시절 경험을 이어갔다. “내가 패션쇼에서 50벌을 선보인다면 50벌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100벌쯤 디자인해서 30벌은 포기, 50벌은 쇼에 나가고, 20벌 정도는 더 여유 있게 만든다. 그 중 5벌 정도는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건 재킷이나 소매의 길이를 길게 짧게 하는 등의 베리에이션(variation)으로 매장을 채운다. 나머지 65벌은 더 이상 만들지 않고 ‘only one’으로 희소가치를 높인다. 사람들이 입기 불편한 쇼적인 의상 10~15벌 정도를 빼면 대부분 다 팔린다. 이런 식으로 운영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거 같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은 남에게 보여주니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 중 몇 개는 나 아니면 못 만든다 하는 옷이 나온다. 그 게 하나하나 누적되면서 실력향상으로 이어진다. 또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옷이 넘쳐난다. 그 중에 내 취향에 맞는 것이 있다면 자기화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세월 탓, 경기 탓만 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고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즉 디자인에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 특별히 디자이너를 좋아하는 잘 맞는 나라가 있다. 모든 나라에서 다 벌려고 생각지 말고 좋아하는 나라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니 문화, 취향을 공부해서 옷을 만든 다음 들고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항구도시 앤트워프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이 곳엔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美), 센트럴 세인트 마틴(英)과 함께 세계 3대 디자인스쿨로 꼽히는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Antwerp Royal Academy of Fine Arts)가 있다. 전국에서 디자이너 60여명을 모집해 중도포기하거나 실력이 안 돼 떨어진 사람을 빼고 12명이 졸업시켰는데 모두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됐다. 월터(Walter)라는 교장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패션에 있어 벨기에가 밀라노나 파리, 런던보다 많이 뒤쳐졌었는데 이들로 인해 크게 부상한 것이다. 지금도 3명의 디자이너는 나이가 40대에 불과하지만 수시로 책을 낼 정도로 훌륭하다.”
“대구에서도 3명 아니 1명이어도 좋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대구패션의 레벨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거다. 디자이너 육성에 투자하고 심혈을 기울이면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구=장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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