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미 작가는 사진, 회화 등과 시, 소설 등의 문학을 연결시켜 현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각각의 매체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 혼합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낸다. 유 작가는 2010년 갤러리분도 첫 개인전에서 테이블, 공, 캔버스, 돌, 숫자나 퍼즐 조각 작품의 모든 사물이 우주를 구성하는 별과 달, 행성으로 변신하는 ‘Cosmos(우주)’ 시리즈의 여러 평면 작품과 단편영화 ‘Bleeding Blue(블리딩 블루)’를 보여줬다. 2014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갤러리 1~3층 전관에 32점의 사진과 1점의 비디오를 전시한 ‘Physical Numerics’ 숫자 시리즈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작가로서의 삶과 동시대 사회상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창작하고, 다시 소설를 소재로 파생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2년 작가가 출간한 소설 ‘적(Enemy)’과 ‘그림없는 퍼즐’에서 텍스트가 회화공간 안에서 어떠한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즉, 손바닥 만한 책의 내용들이 3차원에 가까운 평면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먼저 3층 갤러리분도 메인 공간은 자작 소설 ‘적(Enemy)’에서 시작된다. 창작과정에서 느끼는 자기복제에 대한 두려움을 주제로 하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파생된 돌과 캔버스, 테이블 등의 이미지를 화면에 담아내며 초현실적인 상상의 공간을 표현한다. 작가는 실제 공간에 오브제를 초현실적으로 배치해 사진으로 담고, 그 사진을 다시 캔버스에 프린팅한 후 유화로 리터치하는 과정을 거친다. 작업에는 무게감이 있는 돌덩이와 천으로 싸인 테이블이 공중에 부유한다.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영적인 이미지들은 보는 이에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전달한다. 갤러리분도 정수진 큐레이터는 “이번 신작들은 그동안의 사진 작품과 달리 에디션이 없고, 모두 한 점의 작품으로 제작된다”며 “조각과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작품은 동시대 가장 중요한 매체를 넘나들면서 실제와 환영을 구별해내는 우리들의 불완전한 인식체계에 대한 유머러스한 통찰을 경험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2층에는 작가의 ‘퍼즐’ 시리즈 신작들이 놓인다. ‘아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퍼즐이 존재한다’는 모순된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는 1998년부터 약 26년 간 작가와 함께 성장해 왔다. 조각과 설치작업으로 시작됐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쌓이는 과정을 거쳐 2022년에 ‘그림 없는 퍼즐’ 소설로 완성됐다. 퍼즐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림이 없는 흰색 퍼즐 ‘블랭크’가 가진 고뇌를 현실감 있게 담아낸 이 소설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자아 성장 과정을 본인의 퍼즐 시리즈의 흐름과 유사하게 표현한다. 정 큐레이터는 “유현미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공상과 무의식과 우리가 영위하는 물질적 현실 그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객관적 지표와 디지털 데이터에 파묻혀 사는 현대인들이 여전히 꿈을 꾸고, 환영에 잠기는 것은 상상력 덕분”이라며 “갤러리분도 공간에 펼쳐진 초현실적 풍경을 보며, 우리의 상상력을 촉발함과 동시에 인식을 전환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